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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07/11/01 00:28 by Lokken

지난 봄, 군 입대 일주일을 남겨두고 전국 여행을 다녀왔다. 오늘이 10 31일이니, 여행을 다녀온 지 일곱 달 만에 기행문을 작성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도, 기억을 글로 남기고 또, 이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월에 다녀왔던 일본 IT 연수 때처럼 생생한 기억을 바탕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그 당시에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입대하기 전에 여행을 한번 떠나고 싶었다. 처음에는 외국여행을 다녀올까도 생각했지만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한 끝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부산과 남쪽 해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원은 비슷한 날짜에 입대하는 친구 한 명과 부산에서 가이드를 해 줄 Hikki 형님, 그리고 나 해서 세 명. 마침 여행 기간에 진해에서는 우리나라 최대의 벚꽃 축제인 군항제가 열린다고 하여 여행 계획에 포함하였다. 처음 계획 땐 동해안부터 서남해안까지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군 입대 전에 가는 여행이니만큼 조금 힘들더라도 예산을 최소화하기로 하였다.

 

일정을 짜보니 3 25일 저녁에 출발해서 29일 아침에 도착하게 되는, 2 5일이라는 조금은 엽기적인 일정이 나왔다. 2일은 숙박을 하지만 나머지 이틀은 열차나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우리 일정은 빡빡했다. 열차와 버스 일정을 미리 설정해 놓고, 부산에선 히키형이 가이드를 해 주고 나머지는 가보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들르는 일정이었다. 이런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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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는 날 저녁. 필요한 물품을 잘 챙기고 저녁 9시쯤 집을 나서 청량리 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교통량이 적어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 10시 40 출발하는 정동진행 무궁화호 열차에 탑승하였다. 살짝 배가 고파서 홍익회에서 파는 김밥을 사먹었는데, 한 줄에 3천 원이나 하였다.

 

26새벽 4 45, 정동진역에 도착했다. 아직 어두컴컴하여 근처 PC방에서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어둠이 가시고 있었다. 역 바로 옆에 모래사장이 있고, 바다가 보였다. 난간만 없었더라면 모래사장을 밟을 수 있었을 텐데... 몇몇 사람들은 난간 너머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열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난간 밖에서 바다를 구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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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15분에 동대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열차 안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었다. 이날 해 뜨는 시각이 6시 20었기 때문에 몇 분만 열차가 늦게 왔더라면 정동진에서 멋진 일출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열차가 야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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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지났을까? 열차가 꽤 높은 경사를 올라간다 싶더니, 이내 멈추고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바로 스위치 백 구간이었던 것이다. 열차가 급경사를 올라갈 수 없어서 만들어진 방식이라고 한다(자세한 설명은 이곳 http://reidin.pe.kr/weblog/84 에서).

12 10에 동대구역에 도착하였다. 다음 열차까지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500원 동전을 넣고 컴퓨터를 할 수 있어 가볼 만한 여행지도 찾을 겸 해서 동전을 넣고 정보 검색을 하였다. 45분에 도착한 KTX를 타고 부산역으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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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동전으로 작동하는 컴퓨터에서 정보 검색을 한 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자갈치 시장이었다. 각 지역에서 잡아온 해산물이 한데 모이는 곳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눈요기만 하고 용두산 공원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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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 공원에서는 부산 전경을 둘러볼 수 있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우리의 가이드가 될 히키형을 만나러 다시 부산역으로 이동하였다. 부산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차이나 타운을 지나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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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히키형님 동네로 이동하여 히키형님을 만난 후 짐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시내로 나가 갯장어 구이를 먹었다. 처음엔 살아있는 장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니 비위가 조금 상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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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 밥을 먹고 동백섬으로 향했다. 태종대와 아쿠아리움도 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많았는데, 시간은 없었다. 해변이라 그런지 새로 지어진 아파트가 많았다. 동백섬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어느새 밤이 깊어 왔다. 부산에 온 이상 모래사장에서 한번 걸어보고 싶어 가까운 해운대로 이동했다. 비수기라 그런지 인적이 많지 않았다. 해수욕장에서 뭔가 색다른 것을 기대했지만 비수기에는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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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점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히키 형에게 인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부전역에서 오전 10에 창원으로 떠나는 열차를 타고자 7시쯤 일어났다. 부산 역시 출퇴근시간엔 지하철이 만원이었다. 서울과 별 차이가 없었다. 부전역에 도착한 시각은 대략 9시쯤. 한 시간 정도 남아 동전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로 진해 군항제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히키형님께 전화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 뒤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새 창원역이었다. 부산에서 창원까지 거리가 생각보다 꽤 멀었다. 지도 상으로는 얼마 안되어 보이는데 무려 한 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창원에서 진해로 가는 통근열차는 12시 25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간단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창원의 모든 시내버스가 천연가스 버스로 되어 있던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적어도 우리가 보았을 땐 그랬다).

 

마침내 진해역에 도착하였다. 역 앞에서는 해병대 전우회에서 나와 군항제 안내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들도 가이드역할을 해준다면서 흥정을 하고 있었다.

우선 셔틀버스를 타고 해군진해기지를 둘러보았다.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보안구역을 운 좋게 한번 들어가 봤다는 정도였다. 한 바퀴를 돌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해군사관학교로 가는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학교 안 광장 앞에서 버스를 세워 주었다. 해안에는 거북선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었다. 기념품으로 모자 한 개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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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부터는 충무공 이순신 승전 행차가 있었다. 승전 행차도 멋있었지만, 부대행사로 해군사관학교 학생들이 총을 가지고 하는 퍼레이드에 거의 압도당할 뻔했다. 좋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더라면 가까이 가서 멋진 장면들을 사진으로 많이 담을 수 있었겠지만 초라한 컴팩트 카메라로는 그런 멋진 모습들을 담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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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갈 곳은 많고 시간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제황산 공원이었다. 벚꽃이 잘 피어있어 경치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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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 바퀴를 돌고 바로 해양공원으로 향하였다. 예상 외로 입장료가 조금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곳에서는 강원함이라는 퇴역 구축함을 전시해놓고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전시용으로 잘 만들어진 것 같았다. 다른 곳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해는 저물어 가고, 우리에게는 또 다른 일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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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거제도로 가는 카페리를 타러 갔다. 저녁 7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8까지 연장 영업을 한다고 하여 저녁을 먹고 배를 탔다.


진해 속천에서 거제 실전까지는 배로 약 1시간 정도 걸렸다. 지도를 보면서 거제시내로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거제도에 사는 친절한 아저씨가 1시간마다 한 번씩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다면서, 막차가 9 조금 넘어 있는데 걸어가면 늦을지도 모르니 정류장까지 차로 태워주시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9시쯤에 온다는 버스는 3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막차가 지나가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면서, 여차하면 경찰을 불러 경찰차를 타고 시내까지 갈 생각도 했었다. 다행히도 늦게나마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내는 꽤 번화해 있었다. 영화관도 하나 있었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 해수 온천이 있어 짐을 풀자마자 목욕을 했다. 피곤한 여행길에서 목욕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탕에 들어가자마자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간 곳은 포로수용소 공원이었다. 6·25 전쟁 당시 십만 명이 넘는 포로가 거제도에 수용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포로임에도 UN군이 수용소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홈페이지(http://pow.geoje.go.kr/)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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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들른 곳은 대우조선해양이었다. 2000년에 대우조선에서 분리, 독립하여 지금은 수주잔량기준 조선소 순위에서 세계 3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방문한 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조선소의 방대한 크기,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배의 엄청난 규모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보안상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조선소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가봐도 절대 손해 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매시간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조선소 투어를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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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에도 없던 외도를 가 보기로 했다. 예정대로였으면 통영 - 광주를 거쳐 목포에 이르렀어야 했지만, 그렇게 무리하게 가서 몇 시간 구경도 못하고 서울로 올라가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더 많이 구경하고 올라가자는 친구의 의견에 설득된 것이었다. 3 정각 해금강을 거쳐 외도로 가는 배에 올라탈 수 있었다.

 

해금강이 멋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니 자연의 신비함에 놀랄 뿐이었다. 특히 십자 바위는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런 것이 어떻게 저절로 생길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섬세함에 놀라고,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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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외도에 도착하였다. 외도에서는 입장료를 따로 받았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입장료 때문에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애초에 입장료가 있었으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투였다. 섬에는 딱 90분 동안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입장료가 비싸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잘 꾸며진 섬 풍경을 둘러보고 나면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국적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니! 90분의 시간이 조금은 짧게 느껴졌다. 30분 정도 더 있었다면 조금 더 여유롭게 구경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조금은 급하게 구경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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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목포를 가지 못하고 거제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금강과 외도를 들러 정말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짧은 일정 동안 여러 곳을 돌아봐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도 많이 남았고, 처음으로 해보는 배낭여행인지라 약간의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남도 여행, 기회가 된다면 훨씬 넉넉한 일정으로 다시 한번 떠나고 싶다.

2007/11/01 00:28 2007/11/0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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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07/02/17 02:43 by Lokken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

모닝콜이 7시에 울렸다. “Hello. This is the morning call~” 8시 50분까지 로비에서 모이기로 했기 때문에 일부러 모닝콜을 빨리 넣어준 것 같았다. 너무 피곤해서 전화를 받고 또 잠이 들어버렸다.
7시 30분쯤에 전화가 또 왔다. 이번엔 석영이 형이었다. 후다닥 세수를 하고 8시에 모여 아침을 먹었다. 간밤에 과음을 해서인지 모두 밥을 남겼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식당에서는 “음식을 남기면 벌금 5,000원” 같은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일본인들은 음식 남기는 것을 실례로 생각하기 때문에 벌금 같은 제도가 원랜 없었다가, 최근 들어 일본에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지면서 벌금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는 웃지 못할 말을 들었다. 우리가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이다.

로비에서 일본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사진 한 컷.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다운로드 해가셔도 좋다. 마우스를 클릭하여 큰 화면이 나온 후에 받아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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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지하철 노선도

전용 버스를 타고 아사쿠사 신사로 향하였다. 버스 안에서 박상이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일본에 가면 자판기를 정말 많이 볼 수 있는데, 박상이 일본에 자판기가 많은 이유가 크게 두 가지라고 설명해주셨다. 하나는 일본 인건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거리를 밝게 비춰주면서 방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묵었던 오다이바에서는 밤 8시가 넘자 일부 상점을 빼고는 전부 문을 닫아 어두웠는데, 자판기는 묵묵히 빛을 밝히고 있었다.

일본엔 자전거가 많다고 한다. 대중교통 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한 집 안에도 식구 수만큼 자전거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고, 자전거 등록 제도가 있어 자전거를 도난당해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경찰이 자전거 검문을 할 때 등록증이 붙어있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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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등록증

일본엔 신사가 많은데, 각각의 신사에는 각각의 신을 모신다고 한다. 고이즈미가 즐겨 찾는 야스쿠니 신사처럼 전범들을 모시고 있는 신사가 있는가 하면, 우리가 가는 아사쿠사 신사처럼 부처를 모시고 있는 신사가 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은 유난히 토착 신앙이 강하여 기독교나 불교 같은 종교가 토착 신앙 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교회나 절 안에도 신사가 있고, 종교 행사를 할 때에도 기도를 하면서 신사 참배를 같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같은 애니메이션에도 이런 일본 신사 문화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고 보니, 도쿄에서 십자가를 봤던 기억이 없었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3%라던가…

40분 정도 걸려 아사쿠사 신사에 도착했다. 웅장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도착해서 단체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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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 앞 단체 사진


신사 안에 들어가기보다는 근처에 있는 상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본 신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왔더라면 더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한쪽 벽면에는 옛날의 아사쿠사 모습이 그림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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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아사쿠사 모습

상점에서는 여러 가지 액세서리와 음식을 팔고 있었다. 눈에 띄던 사람 모양의 과자!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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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양의 쌀과자

상점 끝에 있는 문 앞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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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 신사 앞에서

다시 입구로 돌아와서, 분수대에서 손과 입을 닦았다. 신사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 입만 헹구고 뱉어야 하는데, 그만 꿀꺽 삼켜버렸다. 순간 속이 메스꺼웠지만, ‘옛날에 원효 대사는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도 마셨다는데…’하면서 나 자신을 애써 위로했다. 맛은 보통 수돗물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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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헹궈야 하는데 마셔버렸다!

옆에 있던 향에서 잠시 머리를 대고… 이 향을 쐬면 아픈 곳이 낫고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들었다. 머리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잠시 연기를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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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느덧 열한 시. 마지막 행선지인 우에노로 이동하였다. 아메요꼬 시장이 있었는데,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한 식품점에서는 신라면과 삼부자 김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가격도 저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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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이 5봉에 350엔

일본 리바이스 청바지는 정말 비쌌다. 가장 싼 것이 2만 엔, 비싼 것은 3만 엔을 훌쩍 넘었다. 품질이 좋다고는 들었지만 청바지 하나에 30만 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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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바이스 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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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하나에 3만엔이 넘는다.



신발 가게에서는 유명 메이커의 신발을 싸게 팔고 있었다. 친구의 부탁도 있고 해서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짝퉁을 파는 일도 있다고 하여 건너뛰었다. 한국에서도 짝퉁은 싸니까 말이다.

맥도날드를 들러 메가맥을 구입하였다. 350엔이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2,700원 정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빅맥이 2,900원이니, 빅맥보다 메가맥의 가격이 더 저렴한 셈이다. 세트메뉴로 주문하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선 세트로 많이 먹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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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맥


멋진 옷을 차려입고 맥도날드 안에서 나오는 한 일본인을 만났다. 멋지게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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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 복장을 입은 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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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인과 함께



시장 안에 성인 오락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성인용품점도 꽤 크게 차려놓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어려운곳인데… 과연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에 저런 가게가 들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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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ult Shop!

열두 시가 되어 어느 근사한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초밥과 우동이었는데, 전날에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마도 가격의 차이 때문이리라. 아쉽게도 초밥 중에는 와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 매운맛이 생선의 맛을 다 가려버린 안타까운 초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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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과 우동. 와사비가 조금만 적었더라면~

점심을 먹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한 전자 상가였다.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교수님 말씀으로는 우리나라의 전자랜드쯤 되는 곳이라고 하셨다. 닌텐도 Wii 박스가 있어 구입하려고 했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매진되었다는 말 뿐이었다. 일본에서 Wii의 인기는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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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i의 빈 박스..

일본 전자제품 점에서 느꼈던 점 중 한 가지는, 전시되어 있는 제품은 내가 마음대로 써봐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만약 내가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면, 진열되어 있는 카메라 렌즈를 내 카메라와 연결해서 사진을 찍어볼 수도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만지지 마세요”같은 문구가 붙어있었을 텐데… 캐논의 값비싼 EOS 1D Mark II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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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S 1Ds Mark II

어느덧 한 시 반, 이제 공항으로 갈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버스에 올라탔다. 공항으로 가면서 박상이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일본에는 일기일회라는 말이 있어요. 내 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실 기회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에요. 지금 우리가 만난 이 순간도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가이드 일 하면서 기분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화가 날 때는 일기일회를 떠올리면서 한 번 더 참을 수 있게 되었어요…”

멋진 말이었다. 지금까지 나를 돌이켜 보면 감정에 치우쳐서 행동할 때가 많았는데,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아무렇게나 말하면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좋아지겠지만 상대방은 기분이 언짢아질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좋지 않게 대하면 나 역시 기분이 나빠지는데, 왜 나는 가끔씩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일까.

“일본 사람들과 접해보면서 일본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고 느끼셨을 거에요. 일본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 오아시스라는 것을 가르쳐 준대요. 오하이오 고자이마스(아침 인사),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 시츠레이시마스(실례합니다), 스미마셍(미안합니다) 이렇게 네 개의 인사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라고 교육한다고 합니다. 물론 속마음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확실히, 여행에서 만났던 일본 사람들은 정말로 친절하였다. 길을 물어볼 때나 물건을 살 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언제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겉 마음과 속마음이 다르다면 그것이 반드시 썩 좋은 것만은 할 수 없지 않을까? 일본인들은 우리 나라 사람보다 정이 조금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이번엔 우리 조가 한번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연석으로 앉을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면세점에서 발렌타인 21년산 위스키를 샀더니 가방을 선물로 주었다. 면세점에서 산 여러 가지 물품을 이 가방에 넣어 짐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히요꼬라는 일본 전통 과자도 구입하였다. 병아리처럼 생겼는데, 알고 보니 히요꼬가 병아리라는 뜻의 일본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천안의 명물” 호도과자쯤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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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명과자 히요꼬

비행기 안에서 보는 석양은 색달랐다. 하늘 위에서 석양을 맞이할 수 있다니!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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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의 석양

기내식을 먹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귀가 먹먹해져 일어나니 벌써 착륙이다. 한국이구나. 대형 스크린에는 활주로가 보였다. 이윽고 바퀴가 땅에 닿으면서 느껴지는 진동, 급브레이크, 그리고 활주로를 지나 대합실 앞으로..., 정지. 통화권 이탈 표시만 보이던 내 휴대폰에 날짜와 시각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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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착륙한다네...


수하물을 챙기고 만남의 장소에서 잠시 모여 인원 점검을 한 후,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박상과 교수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쳤다. 나중에 뒷풀이 모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끝-

2007/02/17 02:43 2007/02/17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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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07/02/16 01:42 by Lokken

** 3번 글에서 이어집니다. **

오후 두 시 반이 되어 모두 입구에서 집합! 어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임무 수행을 위해 조별로 한 명씩 나와 임무 수행 쪽지를 받았다. 우리의 임무는 도쿄 타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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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임무 목록


영화 “도쿄 타워”에 관련된 흔적 찾아서 사진 찍기… 조금은 난감한 임무 같았지만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일단은 출발. 조용하던 오다이바를 떠나 도쿄 시내 심바시 역에 도착하여 조별로 헤어졌다.

심바시 역은 무려 일곱 개의 전철로 환승할 수 있는 아주 복잡한 역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다른 전철을 타고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석영이 형이 유리카모메 안에서 일본인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든든한 백이 있는데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유리카모메를 타면서 우리나라와는 문화적 차이를 느낀 것이 있었는데, 의자에 앉기 전에 먼저 옆 사람과 앞사람에게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을 외치고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낯선 사람 옆에 앉으면 피해를 주는 것이 된다는데…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리만 나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앉는데 말이다.

심바시 역 앞에서 JR pass 1일 권을 끊고 우리 조 단체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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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시 역에서~

석영이 형이 우리에게 물어본다. “임무를 빨리 끝내고 다른 곳에 들릴래? 아니면 형 도움 없이 너희들 노력으로 임무를 마칠래?” 당연히 전자지... -_-;
그리고 들릴 곳은 시부야로 결정하였다. 도쿄에 왔는데 시부야는 한번쯤 들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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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시 역 풍경

도쿄 타워는 심바시 역에서 야마모테 선으로 한 정거장 떨어진 하마마츠초 역 근처에 있었다. 하마마츠초 역에서 단체 사진 한 컷 – 임무 하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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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마츠초 역에서

내리고 나서 이정표를 보니 1060m나 걸어가야 한단다.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배차간격이 거의 한 시간에 한 대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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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토쿄타워까지 1060m

걸어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세계 무역 센터가 보였다. 꽤 높았지만 그다지 멋있지는 않은 건물이었다. 우리나라 무역센터 건물이 훨씬 멋있었다.

일본 우체국이 꽤 멋있었다. 우체국 앞에는 BMW 오토바이가 있었는데, 집배원 아저씨가 이 오토바이를 몰고 편지를 배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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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앞에 있는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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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앞에 있는 BMW 오토바이

도쿄타워 가는 길에 절이 보였다. 거리 앞에 놓여있는 절을 보면서, 동경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쉬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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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한복판에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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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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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로 가는 지도



15분 정도를 걸어 드디어 도쿄 타워에 도착! 서양 사람을 발견하여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흔쾌히 응하였다. 돌담 밑으로 가더니 거의 누운 자세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 찍는 센스가 있으신 분이었다. 임무 2 수행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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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앞에서~


그가 우리에게 ATM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나중에서야 도쿄 타워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찾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석영이 형이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임무 3 수행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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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이 형이 교수님께 전화를 걸고 있다.

임무 4를 수행하려고, 석영이 형이 도쿄 타워 직원에게 영화 도쿄 타워에 대한 내용을 물어보았다. 이 근처에선 도쿄 타워 영화를 찍지 않았다면서, 롯본기를 가보라고 하였다. 어쨌든 이 근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일단 시부야로 향하기로 하였다. 이때의 시간은 4시 30분.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고자 택시를 타고 다시 하마마츠초 역으로 향했다.

일본 택시는 크기에 따라 값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가 탄 택시는 중형급으로 기본요금이 660엔(약 5천 원)이었다. 우리나라의 3배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신용 카드로도 요금을 낼 수 있다는 문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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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를 받는 택시

우리가 탄 택시 기사는 하마마츠초 역 근처에 있는 세계 무역센터에 우리를 내려주었는데, 우리가 먼저 택시를 탔기 때문에 그곳에서 다른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5분이 넘게 지나도록 보이지 않아 일단 역 앞으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내린 위치가 달라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시부야로 가는 전철을 타고~ 전철 벽에 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여주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철이 지하가 아니라 지상으로 달린다는 점만 뺀다면 우리 나라의 지하철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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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역까지 15분

시부야에 도착하니 5시 15분이었다. 약속 시간인 6시까지는 4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 약속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려면 지금 바로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석영이 형은 도쿄 타워 영화 촬영 장소에서 도쿄 타워를 찍고, 우리는 각자 쇼핑을 한 후 5시 50분에 다시 역 앞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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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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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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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거리 2


쇼핑센터에 들어가서 한 점원에게 헬로키티 파는 곳을 물어보니, 정말로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고 단번에 헬로키티 샵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인형과 몇 가지 액세서리를 사고 나니 벌써 45분. 가야 할 시간이었다.

일본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물건을 계산할 때마다 각각의 물건의 가격을 말해준다. 물론 일본어이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또한, 외국인들을 위해 계산기에 숫자를 눌러 가격을 보여주는 센스까지!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쇼핑센터를 나가니 사람들로 북적였다. 겨우 30분이 지났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늘다니. 사거리 건널목이 동시에 파란 불로 바뀌었는데,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았다.

도로 한쪽에서는 일본 우익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바시 역으로 돌아갈 땐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퇴근 시간과 겹쳤기 때문이리라. 여기서는 “스미마셍”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 지하철 2호선의 출퇴근 시간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사실 그보다는 적기는 했다).

미리 휴대폰으로 늦는다고 연락해서였을까. 우리는 6시까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거의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혼나지 않았다. 교수님과 박상이 우리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웠다.
민행이 형도 우리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얼마나 심심했을까. 저녁을 먹고 8시까지 모이기로 했기 때문에, 서둘러 저녁 먹을 장소를 찾았다. 스테이크집이 눈에 띄었다.

고기는 2천엔 정도였고, 밥을 주문하면 550엔이 추가되고 맥주는 600엔 정도였다. 고기 맛은 그럭저럭… 주문한 지 30분이 넘게 지나서야 음식이 나왔다. 약속 시간인 8시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고기를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삼킬 수밖에 없었다. Well done으로 해 달라고 했는데, 고기 속이 하나도 익지 않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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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집에서 마신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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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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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에 지친 우리 조



그렇게 밥을 먹고 8시에 모여 어제와 오늘 있었던 임무를 간단하게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1등은 2조가, 2등은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조가 하게 되었다. 시간이 초과하면 국물도 없다고 했는데…

유리카모메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9시였다. 피곤했지만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맥주와 음료수, 과자, 육포, 컵라면 등을 잔뜩 사들고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게다가 2등 상으로 받은 맥주 6캔까지~ 11시쯤이었을까. 이번에 우리 연수를 책임지신 교수님 두 분이 들어오셔서 이번 연수에 대한 소감을 말해보라고 하셨다.

석영이 형이 말했다. “다른 학부와 조를 섞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동의하셨다. 사실 이번 연수의 목적 중에는 IT대학 안의 서로 다른 학부끼리의 친선을 도모하는 것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다른 조와의 교류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루려면 같은 조 내에 서로 다른 학부가 섞였어야 했다.
교수님께서도 그 점을 인정하시고, 다음번에는 그렇게 하도록 시도해 보겠다고 하셨다.

우리 조만큼 단합 잘 된 조가 있었을까? 최고의 조장과 최고의 조원들로 똘똘 뭉친 우리 4조! 그래서 우리 조는 다른 조가 구경할 수 없었던 곳을 갈 수 있었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이 가신 후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 시 반까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2007/02/16 01:42 2007/02/16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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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07/02/16 01:04 by Lokken

** 셋째 날의 분량이 너무 많아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
** 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셋째 날엔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났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지만 학교 측의 세심한 배려(?)로 7시 30분에 모닝콜이 울린 것이다. 전화기가 울려 받아보니 “This is the morning call”이라면서 일어나란다.
의상이 형이 씻는 동안 석영이 형(조장)이 전화를 걸어 와서 이번엔 밥 먹으러 같이 가자고 하셨다. 이번엔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식당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21층에 도착하니 8시 20분쯤 되었다. 우리 앞에 열 명 정도가 밥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식당 직원이 우리를 안내해 주려고 나왔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일본인 남성이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 일행까지만 받아 주고 뒤에 기다리던 사람은 그냥 가게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우리를 안내해주던 그 직원이 갑자기 화가 났는지, 서로 말다툼을 하는 것 같았다(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확실하지가 않다). 알고 보니 그 남자가 직원에게 막말을 했다고 한다.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는데, 구조가 다리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양반다리를 하지 않고도 앉을 수 있었다. 양반다리를 계속 하고 있으면 다리가 저려서 불편한데, 우리 나라 식당도 이렇게 되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니 일본식 아침식사가 나왔다. 밥과 된장국이 나왔고, 생선, 거의 익히지 않은 달걀과 달걀말이 등이 반찬으로 나왔다. 김치는 없었다. 처음에는 생선 두 마리를 붙여서 구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 마리를 갈라서 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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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 아침식사


맛은 괜찮았다. 입맛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리 조원들은 모두 맛있게 먹은 것 같았다. 석영이 형이 청국장을 따로 달라고 하여 한 개씩 먹어 보았는데, 청국장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나지 않았고, 별맛이 나지 않았다. 나는 청국장찌개에서 나는 냄새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이걸로 찌개를 끓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식으로는 오렌지 주스가 나왔다.

밥을 먹으면서 바깥을 보니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있었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모두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뛰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출근 시간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그런 것이었을까?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9시 40분이 되어 호텔을 나서 파나소닉 센터로 향했다. 개장 시간이 10시이기 때문에 잠시 기다리면서 단체 사진 한 컷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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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소닉 전경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닌텐도 부스가 있고, Wii가 보였다. 패드를 허공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면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해서 화면에 보이는 커서가 따라 움직이게 된다. 오락실에서 권총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데모용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사이버 캐릭터를 만들어 필드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마리오와 함께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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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와 함께

이 사진을 본 어떤 사람은 “닮았네” 라는 말을 했는데… 조금 충격이었다. 불꽃 먹은 마리오라면 모를까!

2층에서는 환경 보호를 위한 파나소닉의 노력을 설명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여 물을 데워 가정에 공급하는 장치를 작게 만들어 전시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건전지를 옥수수에서 추출한 Polylactide라는 생분해 수지로 만들어서 땅에 묻으면 자동으로 썩게 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 고효율 전구 등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그 옆에는 첨단 제품을 전시해두고 있었는데, 방수가 되는 노트북과 앉기만 하면 자동으로 샤워를 해주는 기계 등이 눈길을 끌었다. 유비쿼터스 관에서는 휴대폰으로 문을 잠그는 기술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영어로 방법을 물어보니 설명을 잘해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105인치 PDP TV를 전시해두기도 하였다. 옆에 있던 50인치 TV가 정말 작게 보였다.

안에는 과학관도 있었는데, 안에 모래가 잔뜩 들어있는 기구를 뒤집으니 모래가 마치 통계학에서의 정규분포를 보는 것처럼 가운데 쪽에 몰리면서 쌓였다. 신기했다.

오감을 이용한 과학 체험관을 유료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지만 시간관계상 가보진 못하였다. 뭔가 멋진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조금 아쉬웠다.
파나소닉 센터를 나와서 잠시 쉬면서 교수님께서 퀴즈를 하나 내셨다. 환경 관련 문제였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상식이라고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차후에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유리카모메 1일 이용권을 한 장씩 받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유리카모메는 무인 열차인지라, 맨 앞칸에 가면 유리창을 통해 앞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이 열차를 운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참고로, 이 티켓을 사서 한 번도 쓰지 않으면 구입한 당일에는 환불 받을 수 있는데, 한 번이라도 쓰면 작은 구멍이 뚫리게 된다. 구멍이 뚫리면 환불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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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카모메 1일 이용권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도요타 메가웹이었다. 아오미 역에서 바로 연결되어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도요타가 만든 자동차들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역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렉서스 자동차! 직접 보니 아주 고급 차는 아닌 것 같았다. 자동차 안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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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 GS450h 안에서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차를 타볼 수 있었는데, 한 타임에 네 명까지만 탈 수 있었다. 일행이 총 일곱 명이었기 때문에 먼저 한 팀이 먼저 타고나서 나는 다음 시간대에 타려고 예약을 해 두었는데, 세 바퀴를 돌고 난 후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다. 굳이 힘을 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예약을 취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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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메가웹 근처에 있는 초밥집에서 초밥과 우동 세트를 먹었다. 900엔(약 7000원)이었다. 맛은 우리나라 회전 초밥집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12시 50분까지 모이기로 했지만, 한 조가 밥이 늦게 나왔다고 하여 30분 정도 기다린 후 미래 과학관으로 이동하였다. 유리카모메로 두 정거장 떨어져 있었다.
미래 과학관으로 이동하면서 처음 본 담배꽁초! 근처에 담배 피우는 곳이 없었던 것일까? 몇 개의 꽁초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본 쓰레기였다.

미래 과학관에서 볼 건 많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적외선의 색상을 통해 온도를 측정하는 기계와 로봇 아시모, 센서가 있는 물개처럼 생긴 털 달린 로봇이었다. 이전에 로봇 아시모의 굴욕 -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BE%C6%BD%C3%B8%F0%C0%C7+%B1%BC%BF%E5&frm=t1&sm=top_hty – 을 본 경험이 있어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면서 아시모가 계단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그럭저럭 잘 오르내렸다. 계단을 내려올 때 한 계단씩 끊어 내려오긴 했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아직은 사람처럼 부드럽게 오르내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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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가 계단을 내려온다


물개처럼 생긴 로봇은 우리가 로봇의 털을 만질 때마다 소리를 내고, 움직이면서 반응하였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그 로봇을 괴롭혔는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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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센서가 있는 물개 로봇


운전 시뮬레이터가 있었는데, 운전대 대신 컵으로 조종을 했다. 처음엔 계속 벽을 들이받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별로 재미는 없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았지만 우리의 눈을 끌지는 못하였다. 아마 못 보고 지나친 것들도 많았으리라.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과 사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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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중생과 한 컷~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 사진 찍는데 애를 먹었다. 조금 더 꾸미면 더욱 예쁠 텐데… Hikki님의 말씀으로는 모범생과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셨다.

과학 전시관 천장은 회색빛 나뭇잎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뭔가 느낌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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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천장


내려올 땐 건물 안을 뱅글뱅글 돌면서 내려오는 구름다리를 이용했다. 가운데에는 지구본이 놓여 있었는데, 색이 계속 변하였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내려가면서 아래를 보니 몇 명의 사람들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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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다리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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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색깔이 계속 바뀐다


계속...
2007/02/16 01:04 2007/02/1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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